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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산 토굴에서는 물이 아주 귀했다. 쌀 씻은 물을 모아 두었다가 설거지를 하고 빨래는 빗물을 받아 두었다가 했다. 세수도 하지 않고 살았다. 전기가 없는 곳이라 석유 곤로에 밥을 했다. 한 번에 사나흘치를 해놓고 배가 고파지면 하루는 된장, 하루는 고추장, 하루는 간장에 비벼 먹으면 그만이었다.
어느 날 삭발이 하고 싶었다. 물이 귀하다보니 머리를 자주 감지 못해 보기도 싫고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이다. '부처님도 남이 깎아 주었나? 당신 손으로 해치웠지' 하면서 내 손으로 홀랑 깎아버렸다.
머리를 싹 깎았을 때의 시원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모든 번뇌가 다 날아가 버리는 기분이었다. 나중에 스님이 된 뒤에 누가 나에게 왜 스님이 되었느냐고 물으면 나는 머리를 기르기 싫어서라고 대답하곤 한다.
해인사의 경우 행자 생활 때 삭발을 하게 되는데 '삭발식(削髮式)'이라는 의식이 있다. 삭발할 사람을 가운데 앉혀 놓고 모든 행자가 둘러앉아 식순에 따라 의식을 거행하고 참회진언을 외우면서 삭발을 하게 된다. 머리를 깎는다는 것은 속세와의 단절을 의미하고 불가(佛家)에 입문(入門)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삭발식의 분위기는 엄숙하다못해 비장하기까지 하다. 그때 세운 서원과 초발심(初發心)이라면 능히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대장부의 기개 넘치는 대자유의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절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고 부른다.
무명(無明)으로 인해 행(行)이 생겼고, 행으로 인해 식(識)이 생겼고, 식으로 인해 명색(名色)이 생겼고, 명색으로 인해 육입(六入)이 생겼고, 육입으로 인해 촉(觸)이 생겼고, 촉으로 인해 수(受)가 생겼고, 수로 인해 애(愛)가 생겼고, 애로 인해 취(取)가 생겼고, 취로 인해 유(有)가 생겼고, 유로 인해 생(生)이 생겼고, 생으로 인해 노병사(老病死)가 생겼다는 것이 12연기(緣起)이다.
풀이를 하면 다음과 같다.
"어리석은 한 생각이(無明) 어리석은 행동을 일으켜(行) 어리석은 세계를 인식하게 되면(識),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 정신과 육체를 만들고(名色), 그 육체 위에 눈, 코, 귀, 혀, 몸, 뜻의 여섯 기관을 만들어(六入), 태어나서는 세상 따라 접촉하다가(觸), 보고 듣고 깨달아 알아(受), 좋아하는 것은 사랑하다가(愛), 마침내는 그것을 취하여(取) 새로운 업을 지으니(有), 그 업에 의하여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켜(生) 늙고 병들고 죽게 된다(老病死)."
근본 무명(無明)을 잘라버리면 생사(生死)가 없어지는 것이다.
삭발하고 났을 때의 상쾌함은 이 세상 어떤 것에도 견줄 수 없는 시원함이다.
― 능인스님의 『선방 이야기 토굴 이야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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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