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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입산한 곳은 단양군 대강면에 있는 원통암(圓通庵)이라는 작은 암자였다. 마을에서 산골짝으로 십리 정도 걸어 들어가서 다시 산 위로 1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인가 하나 보이지 않고 자동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곳에 절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암자가 있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을 켜고 살고, 솥에 불을 때서 밥을 짓는 원시 생활 그대로 사는 곳이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소나무가 마치 분재한 듯이 자라 있고 바위 속에서 나오는 물은 청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마당 왼쪽에는 단양 제2팔경의 하나인 칠성바위가 20m 높이로 솟아 있는데 사람이 손을 내밀고 있는 것처럼 손바닥과 다섯 손가락의 모양이 너무나 완연했다.
원통암 마당에는 새둥우리 모양의 작은 둥우리가 있었다. 어떤 노스님께서 만드신 것인데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가서 앉을 만한 이 작은 둥우리 속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쉬지 않고 정진을 하셨다고 한다. 더운 여름날에는 시원한 나무 그늘로 둥우리를 들고 가고, 추운 겨울날에는 양지 바른 곳으로 둥우리를 들고 가서 정진을 하셨는데 그렇게 3년을 사셨다고 한다. 바람에 찢겨져 펄럭이는 비닐 조각과 다 닳아 헤어진 장판 조각은 초발심자(初發心者)인 나에게 더 없는 무상법문(無上法門)이 되어 주었다.
원통암으로 입산하고 나서 밤마다 꿈속에 돌아가신 아버님이 무척 화가 나신 표정으로 나타나셨다. 아버님께서는 당신이 그토록 바라셨던 교직에 몸담고 있던 아들마저 입산한 것이 매우 못마땅하신 것 같았다.
하루는 꿈속에서 아버님과 심하게 다투는 꿈을 꾸고 나니 마음이 몹시 불편하였다. 그 날 새벽예불을 올리고 나서 법당에서 혼자 기도를 하였다.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부처님이시여! 저는 이제 아버지를 설득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버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시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뜨거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목이 메여 염불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부처님 앞에 엎드려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내 방으로 와 이불을 뒤집어쓰고서 실컷 울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보다도 더 뜨거운 눈물이 솟았다.
"아버님! 이 불효자식을 부디 용서하십시오.
아버님께서 이 길을 허락해 주시지 않으셔도 저는 이 길을 가렵니다.
부디 마음을 돌려주십시오."
그 뒤로는 꿈속에서 아버님이 나타나는 일이 없었다.
주지 스님이 안 계실 땐 내가 새벽 도량석을 했다. 온통 바위산이라 목탁을 치면 온 산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옹 선사의 '토굴가(土窟歌)'뿐이었다.
청산림(靑山林) 깊은 골에 일간토굴(一間土窟) 지어놓고
송문(松門)을 반개(半開)하고 석경(石徑)에 배회하니
녹양춘삼월하(綠楊春三月下)에 춘풍(春風)이 건듯 불어
정전(庭前)에 백종화(百種花)는 처처에 피었는데
풍경도 좋거니와 물색(物色)은 더욱 좋다.
그 중에 무슨 일이 세상에서 최귀(最貴)한고
일편무위(一片無爲) 진묘향(眞妙香)을 옥로(玉爐)중에 꽂아두고
적적(寂寂)한 명창(明窓)하에 묵묵히 홀로 앉아
십 년을 기한정코 일대사(一大事)를 궁구(窮究)하니
증전(曾前)에 모르던 일 금일에야 알았구나.
일단고명(一段孤明) 심지월(心地月)은 만고(萬古)에 밝았는데
무명장야(無明長夜) 업파랑(業波浪)에 길 못 찾아 다녔도다.
영축산(靈鷲山) 제불회상(諸佛會上) 처처에 모였거든
소림굴(少林窟) 조사가풍(祖師家風) 어찌 멀리 찾을손가.
청산(靑山)은 묵묵하고 녹수(綠水)는 잔잔한데
두견새 홀로 우니 이 무슨 경계이며
청풍(淸風)은 슬슬(瑟瑟)하고 명월은 교교(皎皎)한데
백운(白雲)만이 유유하니 이 어떠한 소식인가.
일리재평(一理齎平) 나툰 중에 활계(活計)조차 구족(具足)하다.
천봉만학(千峰萬壑) 푸른 송엽 일발(一鉢) 중에 담아두고
백공천창(百孔千瘡) 깁은 누비 두 어깨에 걸쳤으니
의식(衣食)에 무심(無心)커든 세욕(世慾)이 있을소냐.
욕정(欲情)이 담박(淡泊)하니 인아사상(人我四相) 쓸데없고
사상산(四相山)이 없는 곳에 법성산(法性山)이 높고 높아
일물(一物)도 없는 중에 법계일상(法界一相) 나투었다.
교교(皎皎)한 야월(野月)하에 원각산정(圓覺山頂) 선뜻 올라
무공적(無孔笛)을 빗겨 불고 몰현금(沒絃琴)을 높이 타니
무위자성(無爲自性) 진실락(眞實樂)이 이 중에 갖췄더라.
석호(石虎)는 무영(舞詠)하고 송풍(松風)은 화답(和答)할 제
무착령(無着嶺) 올라서서 불지촌(佛地村)을 굽어보니
각수(覺樹)에 담화(曇花)는 난만개(爛滿開)더라.
나무영산회상불보살(南無靈山會上佛菩薩)
*초발심(初發心) : 처음으로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보리심)을 일으킨 것을
뜻하며, 초발심자는 그런 사람, 즉 처음 불교에 입문한 사람을 의미한다.
*도량석 : 일정한 예식을 통해 도량을 정화하는 행위. 각종 진언이나 천수경,
반야심경, 의상스님의 법성게,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 등을 한다.
*나옹 선사 : 1320∼1376. 고려말의 고승(高僧). 무학대사의 스승.
중국 지공선사에게서 법을 전수 받고 귀국하여 공민왕의 왕사가 되었다.
― 능인스님의 『선방 이야기 토굴 이야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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