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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봉 : 여러분이 경험한 것과 같이 화날 때의 증세는 사람에 따라 아주 다양하고 많을 것입니다. 머리가 아픈 사람, 눈이 아픈 사람, 귀가 아픈 사람, 입이 아픈 사람, 목이 아프거나 뻣뻣해지는 사람, 어깨가 아프고 처지는 사람, 가슴이 아프고 옆구리 갈비뼈가 아픈 사람, 배가 아프고 창자가 뒤틀리는 사람 등 그 증세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즉 전신 오장육부 전체에 다 미치게 되는데 이것은 사람에 따라 모두 달리 나타납니다. 이를테면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자존심이 상해서 화가 나면 폐가 상하고, 코가 아프고 대장에 열이 나고 굳어서 변비가 걸리기도 합니다. 이것 또한 사람의 마음과 그 사람의 체질에 따라 작용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화기들이 공부를 어떻게 방해하는가 하는 것을 먼저 살펴보고, 그 다음은 사람들이 화를 어떻게 해서 일으키게 되는가를 살펴보고, 그 다음은 일어난 화를 어떻게 다스리고 소멸시킬 것인가를 살펴본 다음 마지막에는 어떻게 하면 화 자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면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화두 참구하는 데 '화라는 것이 어떻게 문제가 되는가?'를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각자 체험한 것을 말했듯이 화가 나면 화나는 상태가 모두 똑같지는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화가 나면 밖으로 분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거나 꾹꾹 눌러 참는 사람도 있습니다.
화를 밖으로 분출하는 사람을 살펴보면 화가 나면 날수록 그냥 참지 못하고 상대방한테 화를 내고 성질부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화를 내서 화가 풀리면 괜찮지만 풀리지 않으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그래도 안 되면 욕을 하고 성질 부리고 짜증을 냅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폭력까지 씁니다. 그러다가 안 되면 자살을 하거나 상대를 죽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화를 상대방한테 풀기 위해서 혼자 애를 쓰다가 안 되면 그럴 듯한 명분을 만들어서 세를 규합하고 불린 다음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판단이 되면 상대를 집단적으로 매장을 시키거나 집단적인 린치를 가하기도 하고 그 명분에 따라 상대를 죽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민족이나 국가 간에 일어나는 분쟁도 알고 보면 그 뿌리에는 화내는 마음인 증오나 원한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작년에 일어났던 미국의 9·11 테러사건이나 미국이 벌이는 테러 응징 전쟁을 봐도 그 행위의 뿌리에는 반드시 분노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치범을 감옥에 가두거나 죽이는 행위도 살펴보면 상대에 대하여 분노와 미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생기는 모든 갈등과 다툼을 살펴보면 그 행위의 저변에는 분노와 미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화내는 것이 어떻게 해서 공부를 방해하게 되는지요?
■ 혜봉 : 제가 공부했던 바를 예로 들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처음 참구하게 된 화두는 봉암사에 조실로 계시던 서암 스님을 찾아갔다가 스님으로부터 받은 조주 스님의 '무'자 화두입니다. 그런데 화두공부라는 것은 일체 생각이 끊어지고 화두에 대하여 오직 의심 하나만 남아서 이 화두가 분명히 잡혀야 되는데 아무리 화두를 잡고 참구하려 해도 온갖 망상만 들끓고 잠만 오고 도무지 참구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공부에 대한 회의도 들고 짜증도 나고 스스로에게 화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스님한테도 짜증과 분별이 일어나고 신경질이 났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생각들이 일어났습니다. '화두라는 것은 소용없다. 화두가 무슨 깨달음을 가져다 주는가! 화두는 의미가 없다. 절이나 염불보다도 소용없으니 차라리 염불이나 하자. 스님은 잘 모르시는 것 같다' 하면서 화두도 팽개치고 공연히 스님만 원망하면서 한동안 스님을 외면했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 화두 참구하는 것을 그만두고 동사섭 수련이나 위빠사나 수행이나 염불 수행, 또 주력 수행 하는 곳이 있으면 부지런히 쫓아다녔지요. 그런 가운데 몇 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서울에서 충주로 가는 버스에서 '한 생각 일으켜 지은 망상이 모든 고통을 만들고 모든 속박을 만드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화두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일어나서 화두 공부를 다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공부했던 과정을 살펴보면 처음에 화두를 받고 공부를 시작했을 때 화두를 잡고 공부를 하더라도 망상이 일어나서 화두 공부를 방해하면 그 망상을 끊고 버리는 공부, 즉 방하착하고 화두를 참구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허물이 하나 있고, 그 다음은 화두가 잡히지 않는다고 화내고 짜증내고 신경질내면서 공부법과 스님에게 분별심을 일으켜 잠시 동안이라도 공부법과 화두법을 일러주신 스님을 외면한 허물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화두가 잡히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면서 화두를 버리고 스승을 버리고 등진 허물인데 만약 그 후에라도 화두 공부에 대하여 다시 공부할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저 역시 화두 공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지어서 "화두 공부는 해봐야 소용없다" 하고 공부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거짓말하는 업을 짓게 되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화두로 깨달음을 성취한 많은 선지식들을 부정하는 망언을 했을 것입니다. 특히 제가 공부하러 다니면서 보면 화두 공부하다가 실패를 하고 위빠사나 공부나 선도(仙道) 공부 또는 미국에서 들어온 '아봐타' 공부를 하시고 나서 한 경지를 체험하신 분들이 화두공부를 잘 모르고 말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사실 자신이 잘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는 것은 다 망언이지요.
이와 같이 공부를 하다가 그 공부가 안 되거나 막히면 화를 내면서 그 공부를 부정하거나 외면하면 그 공부로부터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심하면 외면하고 등지는 데서 그치지 않고 비방도 하고 욕도 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이 공부했던 스승이나 단체를 망가뜨리거나 죽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종교 간에 다툼이 일어나고 서로 간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알고 보면 다 같은 이치입니다. 인도인으로서 티벳에 가서 티벳 사람들을 가르쳤던 위대한 스승이셨던 아티샤께서 "수행방법에도 집착하지 말라"고 하셨던 가르침은 정말로 깊이 새길 일입니다.
▶ 정법을 보호하고 악을 쳐부수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 것도 문제가 됩니까?
■ 혜봉 : 부처님은 한 번도 상대가 악한 사람이라고 해서 폭력을 쓰거나 욕을 하거나 죽여 없애라고 하신 일이 없습니다.
▶ 정법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때에 따라서는 악도와 싸워서 물리쳐야 하지 않나요?
■ 혜봉 : 정법을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상대를 때리거나 죽인다면 그는 법에 집착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법에 집착하여 상대를 죽이는 행위는 자비심을 등지고 상대에게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법이나 정법을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사람을 죽인다면 바로 법을 등지는 일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법이라는 것도 본래 법이라고 할 게 없는데 법이라는 것을 보호하고 수호한다 함은 이미 법상에 묶인 바요, 법상에 묶인 것은 망령된 자기를 지어서 이를 자기로 삼고 있음인데 법에는 그 어떤 것도 잡고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 그러면 법을 어떻게 유지합니까?
■ 혜봉 : 법을 유지한다는 생각이 이미 망상입니다. 법 자체는 그 성품이 본래 공(空)하기 때문에 유지하고 말고가 없습니다.
▶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혜봉 : 법은 무엇으로 깨닫습니까?
▶ 마음으로 깨닫습니다.
■ 혜봉 : 그러면 마음으로 깨달은 법이 누군가가 이러쿵 저러쿵 시비한다고 어디로 사라지거나 훼손됩니까?
▶ 아닙니다.
■ 혜봉 : 바로 그와 같습니다. 법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시비하고 문제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죽거나 이 우주가 무너진다 해도 상관 없으며 본래가 물든 바가 없고 훼손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추호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문제되는 것은 그것을 공부한 사람의 마음이 문제될 뿐이지 법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공부한 사람의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문제가 되면 되었지, 법은 본래부터 여여(如如)합니다.
▶ 그러면 아무 것도 수호할 것이 없습니까?
■ 혜봉 : 그것은 아닙니다. 법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문제가 있다면 그 법을 공부하는 사람이 문제가 됩니다. 굳이 말하자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정진 수행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 법을 수호하는 척도가 된다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외형적으로 그 단체를 유지하고 보호하며 지금 공부를 하고 있는 이 건물이나 공간을 유지하려고 애쓴다고 해서 법이 반드시 수호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단체나 이 건물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수행 정진하여 각자가 법을 바로 깨달아 마음에 간직하고 이를 행한다면 그는 어떤 모습, 어떤 장소, 어떤 상황에서도 법을 바르게 수호하고 산다고 하겠습니다.
▶ 공부를 하다가 화가 나면 그가 공부를 했던 단체나 도반 내지는 자기를 가르쳤던 스승을 비방하거나 죽이는 일도 있다고 하셨는데 정말로 그러한 일이 있습니까?
■ 혜봉 : 물론 그런 사례가 있지요. 예를 들면 공부를 하다 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체험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체험도 하게 됩니다. 자기가 싫어하는 이런저런 경험을 하게 될 때, 그 경험에 대하여 문제삼지 말고 일어나는 바를 잘 살펴서 자기보다 공부가 앞서간 분들이나 자기를 지도하는 스승한테 먼저 물어서 공부해 가면 된다고 수없이 가르쳐도 화가 나서 마음이 뒤집히면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서 묶인 분들을 보면 제일 먼저 하는 행위가 법을 문제삼고 그것을 가르쳤던 스승을 문제삼아서 불만을 터뜨리거나 욕을 하거나 비난을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있는 줄 아는데요. (대중들 웃음. 몇 사람은 "네" 하고 답한다.) 또한 저와 같이 법이나 스승을 외면하거나 공부 자체를 때려치웠던 경험들은 누구든지 다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아직도 폭행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공부하다가 생긴 현상 때문에 푸념하고 시비하는 말도 들어봤고 다 때려치우겠다고 날뛰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다시는 안 보겠다고 하던 사람도 있었구요. 그리고 공부로부터 멀어진 분도 있습니다. 물론 저를 죽이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가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봐서는 저를 죽인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대중들 웃음)
그러나 공부하셨던 분들 중에는 과거생(前生)에 자신의 스승을 죽이고 자책했던 마음 때문에 화두 참구가 안 되었던 분은 있습니다. 그 분은 공부하는 곳에는 꾸준히 나오셨지만 화두만 참구하면 '화두 참구해서 뭐하냐, 아무 소용없는 일이야' 하고 자책하는 마음이 저 무의식 깊은 곳에서 계속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화두 참구하던 중에 너무 화가 나고 미치는 마음이 일어나서 깊이 명상을 해보니, 과거 어느 생(前生) 중에 공부하다가 공부가 안 되는 것 때문에 자기 스승을 죽이고 자책했던 인과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마음에서 벗어났지요.
▶ 스승을 죽이면 왜 다시 공부하기 어려운가요?
■ 혜봉 : 스스로 명상해 보세요. 스승을 등지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공부와는 멀어지기 마련인데 스승을 죽였다고 생각해 보세요. 죽인 사람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스승을 죽였다는 죄책감 같은 것이 전혀 일어나지 않고 그 마음이 고요하겠습니까? 이미 망령된 마음에 의해서 스승을 죽였는데 죽인 후에는 더 많은 망념을 지어서 이에 묶이게 마련이며 사람을 죽이고 묶인 마음을 푼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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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