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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공부 안 하거나 놀러 다니면 화가 나서 참지 못합니다.
■ 혜봉 : 그것밖에는 화 내는 일이 없습니까?
▶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화가 나지요.
■ 혜봉 : 그렇다면 화두를 잘못 들고 있군요. 화두를 어떻게 들고 있는지 말씀해 보세요.
▶ 저는 '무'자 화두를 들고 있는데, 화두를 들면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무'자만 남습니다. '무'자만 남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합니다.
■ 혜봉 : 그 다음은 어떻게 합니까?
▶ 그냥 '무∼' 하고 있지요.
■ 혜봉 : 그것은 '무'자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자를 그냥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을 만들어서 신을 잡고 있는 것과 같은 것으로, '옴 마니 반메 훔'을 염송하는 것보다도 못하며 번뇌망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바라보는 것보다도 못합니다. 말하자면 '무'자를 진언처럼 염송하고 있는 것이지 화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무∼' 하고 있는 한은 깨닫는 것은 고사하고 번뇌망상도 다 제도 못할 것이니 '무∼' 하는 것을 화두 들었다 생각하지 말고 화두 공부를 바르게 해 가셔야 합니다.
▶ 왜 '무∼' 하고 화두 드는 것이 잘못 되었는지 자세히 일러주세요.
■ 혜봉 : 어떤 수행자가 조주 스님께 묻기를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는데 조주 스님께서는 그 질문을 받자마자 '없다' 했습니다. 왜 없다 하셨지요?
▶ 모르겠습니다.
■ 혜봉 : 모르면서 그냥 '무∼' 하고 있어야 되겠습니까? 부처님은 일체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 하셨고, 조주 스님께서도 다음 날 다른 수행자들에게는 부처님처럼 일체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수행자에게는 왜 '없다' 했겠습니까? 이것을 참구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즉 '무'자를 그냥 잡고 있는 것은 달을 가리켰는데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킨 손가락만 보고 있는 격입니다. 이는 그가 손가락에 마음이 묶여 있는 경우라서 애를 써서 손가락에 마음을 두면 둘수록 달을 가리킨 본래의 뜻은 잃어버리고, 손가락 때문에 잠시 마음이 집중되어 편안하고 고요하나, 손가락만 치우면 편안하고 고요한 마음은 온데 간데 없고 번뇌망상이 다시 들끓게 될 뿐만 아니라 번뇌도 소멸되지 않고 자신의 본래면목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더 심하게 말하면 그와 같이 화두를 들고 있는 것은 '무'라는 상을 들고 있는 것이며, 마음으로 신을 만들고 부처를 만들어서 진신(眞神)인 줄 알고 진불(眞佛)인 줄 착각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경우라서, 자신의 본래면목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마구니인 줄도 모르고 잡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 그러면 어떻게 참구해야 하는지요?
■ 혜봉 : 그냥 '무∼' 하지 마시고, '부처님께서 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 하셨는데, 조주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없다 하셨는가?'를 참구하셔야 합니다. 스님께서 왜 '없다' 하셨는지 아시겠습니까?
▶ 모르겠습니다.
■ 혜봉 : 스님께서 왜 '없다' 하셨는지 알고 싶습니까?
▶ 알고 싶습니다.
■ 혜봉 : 정말로 궁금해서 알고는 싶으나 모르는 그 마음을 잊지 않고 '부처님께서는 있다 하셨는데 조주 스님께서는 왜 없다 하셨는가' 하면서 참구해 가세요.
▶ 그러면 번뇌나 업은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요?
■ 혜봉 : 화날 때도 화두가 여일합니까?
▶ 혼자 있거나 절에 가서 선방에 앉아 있을 때 화두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화날 때는 화두를 잊어버립니다.
■ 혜봉 : 화가 날 때도 일할 때도 혼자 있을 때도 여럿이 있을 때도 밥 먹을 때도 화장실 갈 때도 '어찌하여 무라고 하셨는가?' 하고 참구해 가세요. 사실 화두 참구가 여일하면 화날 일도 없고 화나는 일에 마음이 가지도 않습니다. 자식이 공부를 하지 않거나 놀러 다니면 화가 나고, 사람들이 하는 일이 내 맘에 들지 않는다 함은 자신의 마음을 타인의 행위나 마음에 두고 이에 따라서 시비분별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즉 그 동안 '화두공부'라고 하셨지만 대상에 따라 시비분별은 시비분별대로 하고, 이에 따라 화가 나면 화기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무∼' 하면서 화두 아닌 화두를 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면 대상을 보며 시비 분별할 겨를도 없을 뿐만 아니라, 깨닫지도 못한 자가 어찌 시비 분별을 하겠습니까? '나니 너니, 옳으니 그르니' 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인데 무엇을 붙들고 시비하겠습니까?
그러나 화두를 들고 있어도 시비가 끊어지지 않고 대상을 보거나 경계에 따라 시비가 일어나면서 화두가 사라진다면 먼저 시비하고 집착하는 마음부터 살펴서 이를 놓으셔야 합니다. 탐진치 삼독심을 끊어버리지 않고 화두를 들어 참구하고자 함은 기름 묻은 손으로 빨래를 하려고 하는 것과 같아서 빨래를 하면 할수록 빨래에 기름이 더 묻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집착하고, 싫어하는 것을 거부하며, 싫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것에 대하여 무관심하면 할수록 탐욕과 진심과 무지가 더 커지고 깊어지고 굳어져서 깨닫는 길과는 점점 더 멀어집니다.
▶ 화두를 참구할 때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을 끊지 않으면 공부의 길과 멀어진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왜 그런지 좀더 자세하게 일러주십시오.
■ 혜봉 : 탐심이라는 것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탐내는 마음인데 흔히 이 마음에는 욕심과 집착하는 마음인 착심이 동반됩니다. 따라서 탐심을 탐욕이니 탐착이니 하고 말하는 것은 탐심에 욕심과 착심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며 이 마음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경우에 탐심이 생기는지 말해보세요.
▶ 저는 예쁜 옷을 보면 탐심이 납니다.
▶ 저는 멋진 차를 보면 탐심이 납니다.
▶ 저는 좋은 집을 보면 탐심이 납니다.
▶ … (많은 대중들이 각자가 일어나는 탐심에 대하여 이야기들을 한다.)
■ 혜봉 : (다 듣고 나서) 바로 이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에 따라, 대상에 따라, 탐내는 마음이 달라지는데 그 뿌리를 가만히 살펴보면 그것이 좋기 때문에 탐하는 마음이 생기고, 탐하는 마음이 생기면 가지고 싶고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고 소유하고 싶습니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가지고 싶은 것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지금 바로 명상해 보세요. (죽비를 세 번 친다. 각자 명상을 하는 동안 침묵이 흐른다. 잠시 후 죽비를 세 번 치고 마친다.)
명상하기 전보다도 가지고 싶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 분 손들어 보세요. (많은 사람이 손을 든다) 명상하기 전과 같거나 생각나지 않는 분 손들어 보세요. (몇 사람이 손을 든다) 별로 생각나지 않거나 아예 생각이 나지 않는 분들은 명상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이러이러한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전혀 없는지. 그래도 없다면 백화점에 가보거나 시내를 나가거나 여행을 다닐 때 자신의 눈이 가는 곳이나 몸이 가는 곳을 잘 보세요. 그러면 틀림없이 마음에 있는 욕망이라는 놈이 자기를 끌고 갈 것입니다.
그러나 보아도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들어도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몸도 마음도 가지 않는다면 탐심이나 욕심이 없다 하겠지요. 그래도 또 살펴보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 중에서도 어떤 사람은 좋다든지 보고 싶다든지 그 사람하고 같이 있고 싶다든지 예뻐 보인다든지 같이 일하고 싶다든지 하는 마음이 있으면 반드시 탐심과 욕심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일에 대해서도 그 일이 좋거나 재미있거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 일을 하고 싶어지고 하려고 합니다. 즉 가지고 싶다거나 만나고 싶다거나 하고 싶다 하는 마음이 있다면 탐심과 욕심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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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