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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련생 가운데 또 한 분이 묻기를) 저는 화두만 참구하면 온갖 생각이 더 많아지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 혜봉 : 화두를 참구하는 데 번뇌가 더 많아지는 이유는 화두를 참구하되 빨리 답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거나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하는 습관이 그대로 드러나거나 과거 어느 때에 수많은 생각을 했던 것이 저장되어 있다가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로부터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생각하던 습관이 평소에도 끊임없이 생각을 지어서 굴리게 되고 이 습관이 화두를 참구하면서도 끊임없이 생각을 짓고 붙이고 굴리게 되니 번뇌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 그러면 화두 참구하면서 번뇌가 많을 때는 어떻게 공부를 하면 좋습니까?
■ 혜봉 : 먼저 화두를 참구하고자 할 때에는 화두 참구에 대하여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간절함이 없을 때는 화두를 들고자 해도 화두가 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화두를 참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인데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어떤 마음이 화두 참구를 방해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 화두 참구를 방해하는 마음을 먼저 소멸시킨 후에 자신의 본래 면목을 간절히 깨닫고자 하는 보리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리고 보리심이 있어서 깨닫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한데 번뇌가 많은 분들은 번뇌가 있거나 말거나 일어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화두가 들리면 번뇌에 상관 말고 화두에만 몰두하세요. 그러다가 보면 번뇌도 스스로 사라지고 화두만 또렷해집니다.
▶ 저는 그렇게 했는데 화두를 들면 들수록 머리에 열이 나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픕니다.
■ 혜봉 : 그런 경우는 화두를 참구하면서 번뇌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에 상관없이 그냥 참구만 한 것이 아닙니다. 잘 살펴 보시면 아시게 되겠지만 머리에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픈 것은 화두를 들되 일체 시비나 분별 내지는 욕심이 없이 참구해야 되는데 참구를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빨리 깨닫겠다고 욕심을 부리거나 빨리 깨닫지 못한다고 짜증이나 화를 내거나 번뇌 없이 빨리 화두 삼매에 들어가서 일체의 번뇌가 없이 화두 일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화두를 참구하되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의도를 가지고 욕심을 부리거나 화를 내거나 용을 쓰게 되면 화기가 머리를 치받고 올라가서 머리를 아프게 하거나 머리를 뜨겁게 합니다. 이럴 때는 화두를 조용히 내려놓고 화두를 참구함에 있어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참구하는지 먼저 살펴볼 일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공부를 했다면 그 의도를 다 내려놓고 의도 없이 다시 참구해 가십시오. 그래도 화기나 머리 아픈 현상이 있으면 이것을 다시 살펴서 완전히 소멸시킨 연후에 화두를 드시기 바랍니다.
또 화두를 참구하시되 번뇌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일에 대하여 마음 붙이지 않고 공부하는데도 계속해서 번뇌가 들끓으면 일단 화두를 내려놓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번뇌를 가만히 살펴보세요. 그러면 어떤 번뇌가 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지를 알게 되고 어떤 번뇌인지를 알게 되면 그 번뇌의 뿌리가 무엇인지 가만히 관찰해 보세요. 가만히 관찰해 보면 그 번뇌의 뿌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이것 때문에 이렇게 마음을 일으켰구나 하고 자각하기만 해도 그 마음은 사라집니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을 때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니면 그것이 영원한 것인지 영원하지 않은 것인지 그것이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를 스스로 자문자답하면서 살펴보세요. 이것이 분명해지면 이것도 역시 바로 사라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해도 사라지지 않으면 자신이 잡고 있는 것이나 집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보세요. 자신이 무엇을 집착하고 있는지를 자각해도 바로 사라집니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으면 마음을 일으키고 집착하는 놈이 어떤 놈인지를 살펴보세요. 그러면 마음을 일으키고 집착하는 놈이 무엇인지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만들고 집착하는 놈을 쳐부수어 열반시키세요. 그러면 즉시 소멸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도 소멸되지 않을 때는 자신의 몸을 고요히 느끼면서 잘 관찰해 보세요. 그러면 마음이 일어나는 부위가 느껴질 것입니다.머리나 가슴, 배 부위를 가만히 관찰해 보면 온갖 번뇌를 일으키는 마음이 자신의 몸 어느 부위에 저장되어 있다가 계속해서 일으킨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몸에 기록되어 있고 저장되어 있는 마음을 잘 관찰해서 소멸시키면 번뇌를 일으키는 마음도 즉시 사라집니다.
▶ 몸에 마음이 저장되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 혜봉 : 몸의 느낌을 따라서 가만히 느끼고 들어가면서 가만히 관찰해 보세요. 느낌을 따라 들어가면서 가만히 관찰해 보면 마음이 어떻게 저장되어 있고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자각하여 온갖 번뇌를 만드는 마음의 뿌리를 잘라 버리면 모든 마음은 즉시 사라집니다.
▶ ('무'자 화두를 참구하던 수련생이 얼마 후에 다시 와서 이르기를) 선생님, 있다 해도 맞지 않고 없다해도 맞지 않습니다.
■ 혜봉 : 그렇다면 깨달은 바를 일러 보세요.
▶ 조주 스님께서는 있다 해도 맞지 않고 없다 해도 맞지 않기 때문에 '무'라고 하신 것입니다.
■ 혜봉 : 그것은 누구 견해입니까?
▶ (침묵하고 있다가) 제 견해입니다.
■ 혜봉 : 제가 물은 것은 그대의 견해를 물은 것이 아니라 그대가 깨달은 바가 무엇인지 일러보라는 것입니다. 더 참구하고 참구하셔서 참다운 자기를 깨달을 때까지 공부하고 나아가세요.
▶ (수련생 중에서 '무'자 화두를 참구하는 수련생이 와서 일렀다) 선생님, 조주 스님께서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는 질문에 '없다' 하신 이유를 알았습니다.
■ 혜봉 : 왜 '없다' 하셨는지 일러보세요.
▶ 불성이 본래 없기 때문에 '없다' 하셨습니다.
■ 혜봉 : 부처님께서는 불성이 '있다' 하셨는데, 그러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틀렸다는 말씀입니까? 왜 부처님은 '있다' 하셨고 조주 스님께서는 '없다' 하셨죠?
▶ ….
■ 혜봉 : 뿐만 아니라 조주 스님께서는 다음 날 여러 수행자들에게 '개뿐만 아니라 움직거리는 미물에 이르기까지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불성이 본래 없기 때문에 '없다' 하신 것이라면 불성이 '있다' 하신 것은 무슨 뜻입니까? '없다' 할 때는 언제고 왜 또 '있다' 하셨습니까? 그 도리를 아시겠습니까?
▶ 모르겠습니다.
■ 혜봉 : 본래 없기 때문에 '없다' 함은 마른 똥막대기가 부처이기 때문에 '부처가 뭡니까' 하는 물음에 '마른 똥막대기를 내보였다'고 하는 대답과 다르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운문 스님께서 마른 똥막대기를 내밀었다고 해서 '마른 똥막대기가 부처구나' 하고 생각한다든지 조주 스님께서 뜰앞의 잣나무를 가리켰다 해서 '잣나무가 부처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선지식들께서 달을 가리켰을 때 달을 본 것이 아니라 손가락을 보고 손가락을 이른 것과 같습니다. 즉 없다는 말에 묶여서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없기 때문에 없다는 생각도 내려놓고 부처님은 '일체중생이 불성이 있다' 하셨는데 조주 스님은 어찌하여 '없다' 하셨는지 다시 참구하세요.
▶ (어느 날 또 한 수련생이 찾아와서 선생님께 자신이 공부한 바를 말씀드렸다) 저는 화두를 들면 모든 번뇌가 끊어지고 편안해집니다.
■ 혜봉 : 화두를 들면 일체 번뇌가 끊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면 화두를 들 때와 같이 일상 생활에서도 일체 번뇌가 끊어져서 항상 편안합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 혜봉 : 그렇지 않다면….
▶ 짜증도 나고 화도 나고 성질도 납니다.
■ 혜봉 : 화두를 들고 있을 때는 편안한데, 어떤 경우에 화나고 짜증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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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