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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先師) 경봉 노사는 강원을 졸업하고 종무소에서 소임을 살아야 했다. 서기를 보았지만 마음은 항상 수행분상에 있었다고 자주 그 시절 이야기를 하셨다. 그래서 시간나는 대로 경을 보곤 했는데, 강원에서〈화엄경〉볼 적에 “하루종일 남의 보배(經)를 세나 나에게는 반 푼어치의 이익도 없다(終日數他寶 自無半錢分)”라는 말에 발심이 되어서 강원 학인 때도 조석으로 30분씩 혼자 앉아 정진하였다 한다.
이미 발심이 되어 종무소에서 사무를 보고 있어도, 마치 몸은 감나무에 있어도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새와 같아서, 달이 휘영청 밝은 밤에 걸망을 싸 짊어지고 ‘통도사야 잘 있거라. 나는 공부하러 떠난다’ 하고 야반도주하셨다. 처음에는 내원선원 혜월(慧月) 선사를 찾아뵈니, “이 도리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거든”이라 하셨다 한다. 인연이 맞지 않음을 알고 바로 떠나 해인사 퇴설당, 황악산 직지사, 금강산 마하연 등지로 행각하다가 10년만에 돌아오니, 은사스님이 ‘공부한다고 야반도주까지 하였으니 어디 원없이 실컷 해보라’고 큰 절 바로 옆인 안양암에서 지내게 하였다. 내 판단으로는 아마 이 때가 스님의 공부가 익은 시절이 아닌가 생각된다. 밥먹고 해우소 가는 때 외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진하였다고 하니, 공부가 순숙하게 익는 시절, 마치 맹구우목(盲龜遇木)과도 같은 절대절명의 좋은 기회였던 게지.
이런 삼매에 젖은 시절, 스님은 또 염불만일회의 회장을 맡아 항상 삼남대법사(三南大法師)를 자처하며 농사일 하는 들녘에서 요령을 흔들어 정자 아래 나무 그늘이나 시골 장터에서 설법하셨다. 어떨 적에는 융숭한 대접을 받기도 했지만 어느 시골에서는 농사 일 방해 놓는다고 내쫓김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극락암에 화엄산림 설법회를 개설하여 암자에서〈화엄경〉을 주제로 몇 분이 돌아가면서 대중설법을 하셨는데, 동짓달에 일주일도 하고 보름도 했었다. 그러던 1927년 겨울 용맹정진을 하셨다. 낮에는 설법, 밤에는 정진, 그 지칠 줄 모르는 정진은 마침내 오도(悟道)의 소식을 전하게 된다. 그 때의 삼소굴 일지다.
“12월 12일(음 11. 19) 월요일 맑음/ 이 날은 대도(大道)를 성취한 날이다. ‘종소리 목탁소리에 급히 문을 나서니/ 푸른 하늘 바다런 듯 구름 한 점 없구나/ 한 빛이 삼천계를 터져 비추니/ 나와 건곤을 분간키 어렵네(鐘鐸方鳴急出門 碧天如海徹無雲 一光圻照三千界 我與乾坤未別分)’” 그리고는 “12월 13일/ 오전 2시30분에 조사선의(祖師禪義)를 깨닫다./ 내가 나를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 눈앞에 바로 주인공이 나타났네/ 허허, 이제 만나 의혹 없으니/ 우담발화 꽃 빛이 온누리에 흐르누나.”
그 다음날로 설법은 달라졌다. 깨닫기 전과 후가 달라진 부분을 한 번 찾아보기 바란다. “12월 14일/ 설법.정진하다./ 온 누리 중생들 백년을 살지라도/ 이 마음 못 보면 한갓 꿈속의 잠이라/ 아미타불을 어찌 멀리서 구하랴/ 이름도 나와 같아 눈앞에 있는 것을(法界衆生過百年 此心無見夢中眠 阿彌陀佛何求遠 與我同名坐目邊)” 설법이 특별히 달라졌다기 보다는 자신감에 넘치는 대목이 아니겠는가!
통도사 극락호국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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