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에서 오대산(五臺山)은 한국이나 중국 모두 문수도량(文殊道場)으로, 화엄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행각시절 오대산 상원사 청량선원을 참 좋아했었다. 그 시절 나는 가끔 단월들에게 편지를 하곤 했는데, 그 편린을 여기 소개해 보자. “비온 뒤 아마 오대산 하늘만큼 포오란 하늘은 세상에도 없는 것 같아요. 오대산의 여름 산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그리고 헐렁한 녹음기에서 파열음으로 울어대는/ 심포니의 선율(旋律)에 그저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녀의 꿈 그런 눈길이 아직 덜 가신 스님과/ 어려운 여름을 그저 즐겁게 보냅니다… 오대산에서 1978. 6월”
어릴 적 자연에 심취해 있던 시절 얘기다. 그런데 오대산은〈화엄경〉과 인연이 많다. ‘보살주처품(菩薩住處品)’에 이런 내용이 있다. “동북방에 청량산(淸凉山)이 있으니 옛적부터 보살들이 거기 있었으며, 지금은 문수사리보살이 그의 권속 1만 보살과 함께 그 가운데 있으면서 법을 연설하느니라(東北方 有處 名淸凉山 從昔已來 諸菩薩衆 於中止住 現有菩薩 名文殊師利 與其眷屬諸菩薩衆一萬人俱 常在其中 而演說法).”
오대산은 기기묘묘한 절경은 아니지만 다섯 손가락을 반쯤 오므린 형상으로 그 중앙에 위치한 상원사 선원은 참으로 수행인이 정진하기에 안성맞춤인 도량이다. 그 시절 시간만 나면 중대(中臺) 보궁에 올라 부지런히 백팔참회를 하며 신심을 다졌었다.
중국의 오대산은 규모가 우리의 오대산보다 큰 것 말고는 산세는 비슷하다고 들었다. 그 중심에 위치한 대화엄사의 조사당(祖師堂)에 중국 화엄종의 5조가 나란히 모셔져 있다. 초조(初祖) 두순(杜順), 2조 지엄(智儼), 3조 법장(法藏), 4조 청량(淸凉), 5조 종밀(宗密) 선사까지. 생전의 경봉 노사께서도〈화엄경〉을 좋아했고 중국의 오대산을 한 번 가보고 싶어 했지만, 그 시절 중국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인지라….
〈벽암록(碧巖錄)〉제35칙에는 무착문희(無著文喜, 821~900) 선사가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한 ‘전삼삼후삼삼(前三三後三三)의 화(話)’가 유명하다. 무착스님은 위앙종의 선사로 아마도 삼보일배(三步一拜)의 수행으로 오대산 참배를 가는 중에 문수보살을 만난 모양이다. 문수보살이 한 사찰을 화현으로 나타내 서로 대화한 내용이다.
문수보살이 묻기를, “어디서 왔는가?” 무착스님이 대답했다. “남방에서 왔습니다.” “남방의 불법은 어떻게 지키는가?” “말법에 비구들이 계율을 지키는 이가 적습니다.” “대중은 얼마나 되는가?” “어떤 곳은 300도 되고 어떤 곳은 500도 됩니다.” 그리고는 반대로 무착스님이 문수보살에게 질문했다. “이 곳은 어떻게 불법을 지킵니까?” “범부와 성인이 함께 살고 용과 뱀이 섞여 지낸다네.” “대중은 얼마나 됩니까?” “앞도 삼삼(三三)이요 뒤도 삼삼(三三)이니라.” 지견이 막힌 학인과 지견이 열린 보살의 대답이 이처럼 다르다. 5만의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오대산에 사는 대중이 도대체 얼마나 된다는 말인가. 눈 가진 이들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어쨌든 지금도 오대산 운수(雲水) 시절이 그리워진다.
통도사 극락호국선원장
|
불교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