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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를 들고 공부하는 경우, 처음에는 오로지 화두 일념을 목적으로 망상에 빼앗기지 않고 여일(如一)하게 지속이 되도록 애를 써야 한다. 온 정신의 힘을 모아 화두의 의심으로 밀고 또 밀어나가야 한다.
잡념이 들어오면 정신을 차려 화두를 드는 것 외에 특별한 묘약(妙藥)은 없다. 하루에도 수천 번, 수만 번 화두를 챙기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을 집중하여 밀어나가지 않으면 아무런 소득이 없다. 일체처(一體處) 일체시(一體時)에 오로지 화두 일념이 되도록 틈을 주지 않고 애를 쓰고 또 써야 한다.
이렇게 여러 날, 여러 달을 애쓰다 보면 간절한 의심이 녹아 평상시 정신으로 돌아가 공부하기 이전의 정신과 같아지게 된다. 이것은 육식(六識)이 녹아 마음이 약간 공(空)해져서 생기는 현상으로 정상적인 과정이다. 여기서부터는 간절한 형체의 의심은 아닐지라도 가끔씩 화두로써 쇠쐐기를 박아가면서 정신을 가다듬어 망상이 없는 정신을 지속해 나가면 된다. 이 정신이 곧 의정(疑精)인 것이다.
이 화두의 정신, 즉 의정이 완전하여 순일무잡(純一無雜)하면 활연대오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공(空)해져서 텅 빈 것처럼 느껴지고, 간절한 의심이 녹아 평상시 정신에 불과한 정신으로 정진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슬퍼질 때가 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꾸만 눈물이 나오고, 세상이 슬프게만 보이고, 사는 낙(樂)이 없어진다. 이것은 비마(悲摩)에 빠진 것이다.
오랜 다겁생래에 형상 속에서 살아온 습관이 조금 녹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허무감을 느끼게 되는 것인데, 슬프다는 감정도 한 가지의 형상이므로 그것을 떨쳐버리고 평상심을 가져야 한다.
여러 날 정진에 애를 써서 화두의 정신이 앉으나 서나 누우나 변함이 없고, 정신을 차리거나 가만히 놓아두고 있거나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이 똑 같은 상태가 되면 자기도 모르게 환희심이 생겨나게 된다. 바람소리, 물소리가 법문 아닌 것이 없고, 세상이 너무나 신기하게 보인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마음이 즐겁고 유쾌하여 날아갈 듯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희마(喜摩)에 빠진 것이다. 기쁘다는 감정도 한 가지의 형상이므로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다.
천생산 토굴 시절, 어느 날이었다. 방에서 정진을 하다가 소변을 보러 마당에 나왔는데 정진을 할 때의 정신 그대로였다. 애써 지속하던 화두의 정신이 꽉 차서, 앉아있을 때나 움직일 때나 똑같고, 정신을 차려도 가만히 놓아도 똑같아지고 나니 가슴 벅찬 환희심이 솟아났다.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지저귀는 새소리는 즐거운 노랫소리로 들리고, 흔들리는 나뭇가지는 흥에 겨워 춤을 추는 듯했다. 마당에 개미가 기어가는 것이나 파리가 날아다니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였다. 산 속에서 혼자 있는데도 세상이 극락이었다.
며칠이 흐르면서 아무래도 공부 점검을 받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평소에 공부를 점검해 주시는 스승님을 찾아뵈었다. 스승님께서는 내가 아무런 말씀을 드리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본래의 마음은 시방(十方)과 주위가 없으며, 색깔이 없고 모양이 없고 냄새가 없음으로서 모든 것이 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없는 것도 없고, 그 없는 것조차 없는 것이 본 체(體)인고로, 이미 낙(樂)도 없고 고(苦)도 없음으로서 그 이름 왈(曰) 극락(極樂)인 것입니다.
낙(樂)이 있을진댄 반드시 고(苦)가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낙이라는 자체의 낙이 있을진댄 실지 낙이 아닌 것입니다. 낙도 없으며 거기에 고도 함께 없는 것을
이름해서 극락(極樂)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미 극락 자체에 들어가서 모든 것을 행하고 쓸 때, 행함이 없음이요 씀도 없음이니, 이것은 상(相)이 없으며 또 서로가 없는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이룬 것입니다.'
필요할 때 공부의 상태를 점검해 주시는 스승이 계시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 능인스님의 『선방 이야기 토굴 이야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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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