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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산 토굴은 천장을 쳐다보면 시커먼 바위 그대로였다. 여름엔 바위틈으로 빗물이 새어들어 벽지에 시커멓게 곰팡이가 생겼고, 겨울엔 차가운 석풍(石風)이 일어 방안에서도 털모자를 쓰고 있어야 했다. 촛불을 켜놓으면 석풍 때문에 방안에 바람이 일어 그을음이 생겼기 때문에 호롱불을 켜서 심지를 낮추어 놓고 살았다. 달이 뜨는 날엔 달빛으로 살았다.
어느 날 밤이었다. 사르르르 하는 소리에 어두컴컴한 천장을 쳐다보니 커다란 지네가 기어가고 있었다. 한 뼘이나 되는 지네 여러 마리가 벽을 타고 내려와 방을 빙빙 돌아다녔다. 나중에는 조그마한 지네 새끼까지 나와 방은 온통 지네 세상이었다.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 때가 7월이니 겨울잠 자고 나올 때는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한 일이었다. 여기 온 지 1년이 다 되어갈 동안 보이지 않던 지네가 갑자기 이렇게 많이 한꺼번에 나타나다니? 무슨 연유가 있는 것일까? 가만히 앉아 오늘 있었던 일을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오늘 낮에 볼일이 있어 시내에 갔다. 구미 시내에 사는 어떤 스님이 내 이름으로 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서 내려오라고 한 것이다. 은행 일을 보기 위해 어떤 보살님과 같이 은행에 갔다. 은행 창구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같이 간 보살님이 빨리 하라고 하면서 내 옷을 잡아 당겼다. 아직 스님이 아닌 상태에서 산 속에서 혼자 지내는 모습이 초라하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그 보살님을 노려보았다. 곧 그 보살님은 내 옷을 놓았다. 그리고 나서 은행 볼일을 보고는 산으로 돌아왔다.
'아하! 오늘 내가 진심(瞋心)을 내었구나. 옷을 잡아당기든 말든 아무렇지도 않았어야 하는 건데... 저 중생들은 진심을 낸 과보로 저런 몸을 받았는데, 내가 진심을 내니 같이 놀자고 나왔구나. 내가 산채로 지네 지옥에 떨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살았던 분들 중에 지네에게 물려 못 살고 간 경우가 많았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지네야, 제발 물지는 말아다오. 여기는 본래 너희들의 집인데 사람들이 나중에 집을 짓고 들어왔으니 너희들이 주인이고 내가 객(客)이다. 너희들이 나를 쫓아내면 나는 아무 곳도 갈 곳이 없는 몸이란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같이 도(道)나 열심히 닦아보자.'
그러고는 지네가 득실거리는 방에서 정진하고 잠을 잤다. 대개 밤 12시에 자서 아침 6시에 일어났는데 지네 때문에 잠을 못 이룬 적은 없었다. 앉아 있는 주위를 빙빙 돌아다녔지만 한 번도 물진 않았다.
*진심(瞋心) : 성내는 마음
― 능인스님의 『선방 이야기 토굴 이야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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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