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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합니다.
■ 혜봉 : 그런데 일을 실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누구인가요?
▶ 제가 그랬습니다.
■ 혜봉 : 일을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당신인가요.
▶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면서) 제가 아니군요. 저는 지금까지 이런 생각에 잡혀 있으면서 이것이 제 자신인 줄 알고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한참 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한다)
■ 혜봉 : (한참 동안 우는 것을 지켜보다가 울음을 그쳤을 때 다시 질문을 하신다) 당신은 생각을 하지 않을 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까?
▶ 예, 압니다.
■ 혜봉 : 생각을 하면 생각한다는 것도 압니까?
▶ 압니다.
■ 혜봉 : 불안이 없을 때는 불안이 없다는 것도 압니까?
▶ 예, 압니다.
■ 혜봉 : 불안이 없어지면 불안이 없어진다는 것도 압니까?
▶ 예, 압니다.
■ 혜봉 : 그러면 불안이 없을 때나, 불안이 생길 때나, 불안이 있을 때나, 불안이 사라질 때나, 생각이 없을 때나, 생각이 생길 때나, 생각이 없을 때를 당신은 다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다 알고 있는 당신은 불안이 있건 없건, 생각이 있건 없건 이러한 상황에 영향을 받습니까?
▶ 아무런 영향 받지 않습니다. (다시 울음을 터뜨린다.)
■ 혜봉 : 문제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 혜봉 : 그래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불안이니 생각이니 하는 것은 마음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현상이며 그림자와 같고 파도와 같고 아지랑이와 같은 것일 뿐입니다. 본래의 자기는 생각이나 느낌과는 아무 상관없어요. 허공에 구름이 일어났다 사라지고 바람이 일어났다 사라져도 허공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일어나도 그 자리요, 사라져도 그 자리요, 있어도 그 자리요, 없어도 그 자리입니다.
이와 같이 참다운 자기는 일체 현상과 상관없으나 일체 모든 현상은 참다운 자기를 벗어날 수 없으며 참다운 자기는 이러한 일체 모든 현상을 소소영령하게 다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본래부터 이러한 자기로 살고 이러한 자기가 참다운 주인공이며 이러한 자기를 깨쳐서 알아야 합니다. 마음에서 일어난 생각을 자기로 삼고, 느낌이나 감정을 자기로 삼는 데서 벗어나서 이러한 생각이나 감정과도 상관없는 자기를 여실히 참구해서 참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번뇌망상에서 벗어나고 미망에서 벗어나서 미망에서 헤매는 중생들을 도울 수 있는 보살이 되어야 합니다.
▶ 그래도 일은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 혜봉 :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지금 하고 있습니까?
▶ 아닙니다. 사실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 혜봉 : 아무 것도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라면 무엇을 잡고 있지요? 일을 잡고 있습니까?
▶ 그런 것 같습니다.
■ 혜봉 : 일을 잡고 있다면 그 일을 눈 앞에 내 놓아 보세요,
▶ 내 놓을 수 없습니다.
■ 혜봉 : 눈 앞에 내 놓을 수도 없는 일을 어떻게 잡고 있을 수 있지요.
▶ '일을 실패하면 안돼! 꼭 성공해야 돼!' 하는 생각을 잡고 있습니다.
■ 혜봉 : 무엇에 묶여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 성공과 실패에 대한 생각에 묶여 있었습니다.
■ 혜봉 : 자, 보세요. (찻잔을 들어 보이면서) 이 잔은 본래 있던 것입니까? 없던 것입니까?
▶ 본래 없던 것입니다.
■ 혜봉 : 본래 없던 것이라면 이것이 없었을 때 (들어 보이면서) 이 잔이 없었다고 해서 어떤 문제가 있었습니까?
▶ 없었습니다.
■ 혜봉 : 이 잔이 있다고 해서 특별한 일이 있습니까?
▶ 없습니다.
■ 혜봉 : 있다가 깨져서 없어지면 문제가 있습니까?
▶ 문제없습니다.
■ 혜봉 : 분명합니까?
▶ … 그 잔이 있으면 차를 마실 수 있다는 생각과 깨지면 아깝다는 생각이 납니다.
■ 혜봉 : 꼭 이 잔이 있어야 차를 마십니까?
▶ 그것은 아닙니다.
■ 혜봉 : 그렇습니다. 이 잔이 없어도 차를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많습니다. 따라서 이 잔이 있다 해서 뭔가 더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의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생각을 붙여 집착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생각을 지어서 생각에 묶여 있는지 모르고 끌려 다닙니다. 그래서 없어지면 아까워하고 상심하면서 상처도 받고 실망도 하고 괴로워합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으로 마음을 지어서 마음에 묶여 있음을 모르고 이것이 (잔을 들어 보이면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일 자체에 특별한 가치나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정말로 이것이 착각이며 무지인 줄 깨닫고 이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 잔의 있고 없음과 일의 성공과 실패도 분명 이와 같습니다. 꽃은 피었다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시들어 땅에 떨어졌다고 상심하지 않습니다. 다만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 되면 낙엽이 질 뿐입니다. 서산에 해 지고 동산에 달이 뜹니다. 그냥 이러합니다. 잔이 있으면 잔으로 마시고 바가지가 있으면 바가지로 마시고 이것도 없으면 손으로 물을 떠 마셔도 상관없습니다.
참으로 생각을 지어 생각에 끌려 다니지 말고 생각과 상관없는 자기를 요달하셔서 허공과 같이 걸림이 없고 물듦이 없는 본래의 자기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살고자 하려면 생각이나 감정은 참다운 자기가 아닌 줄 알고 생각과 감정이 아닌 이것을 여실히 아는 참다운 자기를 깨달을 수 있도록 열심히 정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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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