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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돌아가서 생활 속에서 저를 돌아보니 끊임없이 저를 내세우고 만들고 있는 저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본래부터 일체가 없다는 것을 알고 모든 것이 다 생각이 지은 망상임을 알아 다 버리고 나니 빠른 속도로 내가 없는 그 자리로 돌아갔으며 내가 없는 자리가 분명해집니다.
■ 혜봉 :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일체가 본래부터 없는 데서 나온 것은 분명한데 천하만물은 그 모양이 다를 뿐만 아니라 이 돌은 (돌을 들어 보이면서) 감정도 없고 생각도 없고 그 재질이 단단한 반면 이 꽃은 (꽃을 들어 보이면서) 모양도 이렇게 아름답고 냄새(꽃을 코에 대어보며)도 향기롭단 말입니다. 또 사람은 어떠한가 하면 말도 하고, 생각도 하고, 감정도 있고, 몸을 움직여서 걷기도 하고, 이렇게 물건(컵을 들어 보이면서)을 들기도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 본질이 다 무(無)라고 했는데 어찌하여 삼라만상 모든 것들은 그 모양과 성품들이 각기 다 같지 않고 서로 다르지요?
▶ 생각 때문입니다.
■ 혜봉 : (돌을 들어 보이면서) 이것이 생각 때문에 이런 모양을 하게 되었단 말인가?
▶ 아닙니다.
■ 혜봉 : 그러면 무엇입니까?
▶ 분명히 몸도 마음도 다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일체가 다 사라지고 허공 가운데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끊어지고 그냥 고요하기만 했습니다.
■ 혜봉 : 그런데 그대는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무엇이 이렇게 말하고 있지요?
▶ 제 생각입니다.
■ 혜봉 : 내 생각이라는 것이 본래 있습니까?
▶ 없습니다.
■ 혜봉 : 김 군!
▶ 예.
■ 혜봉 : 지금도 생각이 대답을 했습니까?
▶ 아닙니다.
■ 혜봉 : 그러면 무엇이 '예' 하고 대답했지요?
▶ 모르겠습니다.
■ 혜봉 : 좋습니다. 본래 몸도 없고, 감정도 없고, 생각도 없고, 마음도 없고, 이거니 저거니 할 것도 없는데 천지만물 일체가 그 모양, 색깔, 남새, 맛, 작용을 달리합니다. 그러면 본래가 한 물건도 없는데 보고, 듣고, 느끼고, '김 군' 하고 부르면 '예' 하고 대답하는 이 놈의 본래면목이 뭘까 하고 더 참구해 가세요.
▶ 저는 천지만물 일체가 다 하나임을 깨달았습니다.
■ 혜봉 : 어떻게 천지만물 일체가 다 하나인지 자신이 공부한 바를 일러보세요.
▶ 저는 선생님께서 일러주신 방법대로 제 몸을 버리고 제 마음을 버리고 제가 집착하던 것을 다 버리니 남는 것은 오직 텅 빈 우주 허공만 남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제가 사라지면서 우주 허공이 되었는데 우주 허공에서 다시 온갖 별도 생기고, 지구도 생기고, 지구에서는 나무도 생기고, 온갖 생명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무를 보면 제가 나무가 되고, 돌을 보면 돌이 되고, 물을 보면 물이 되고, 새를 보면 새가 되고, 하늘을 보면 하늘이 되고, 그 어떤 것도 나눌 것이 없고 또 나눌 수도 없었습니다.
■ 혜봉 : 지금도 그러합니까?
▶ 지금도 가만히 마음을 비우고 명상을 하면 바로 그와 같이 됩니다.
■ 혜봉 : 아주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묻겠습니다. (종이를 들어 보이면서) 이것도 당신입니까?
▶ 예.
■ 혜봉 : (컵을 들어 보이면서) 이것도 당신입니까?
▶ 예.
■ 혜봉 : 이 휴지나 책상이나 나무나 흘러가는 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과 하늘과 모든 만물이 본래 자기와 하나인데 이러한 것들을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물건을 함부로 낭비하고 버리고 자연을 자신의 탐욕과 이익을 위해 마음대로 훼손합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 안 됩니다. 일체가 다 나인데 어찌 함부로 할 수 있습니까. 자연이나 사물을 함부로 하는 것은 결국 자기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며 자기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 혜봉 : 사람에 대해서는 어떠합니까. 어떤 사람은 천하고, 누구는 귀하고, 누구는 안 된다, 누구는 밉다, 나쁜 놈이다, 죽일 놈이다, 누구라야 된다 하고 나누어서 시비하고 싸우고 다투고 정의라는 이름으로 불의를 쳐부숴 없애겠다 하면서 사람들을 적이라 하여 마음대로 가두고 억압하고 죽입니다. 이것이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 본래는 있을 수 없습니다. 모양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달라서 사고방식과 각자의 신념이 다를 뿐이지 결국은 나와 다르지 않으며 근본에서 보면 일체가 다 나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무시하고 죽이고 하는 것은 다 자기를 미워하고 무시하고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 혜봉 :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타인을 해치는 것은 결국은 자신을 해치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죽여 놓고서도 손뼉치고 웃고 즐깁니다. 이를테면 미친 사람이 자기 눈을 송곳으로 찌르고 칼로 자기 손가락을 잘라놓고서 웃고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실이 이와 같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자기 자신은 망령되이 이렇게 살고 있지 않는지, 나와 너를 둘로 나누어서 너를 죽이고 나만 살려고 하거나 너를 짓밟고 내가 올라가려고 하지는 않는지 살펴보는 일입니다.
만약 지금까지 그와 같이 살아온 일이 있다면 참회부터 할 일입니다. 우선 자신의 무지부터 참회할 일이며 무지 때문에 함부로 말을 하여 타인의 가슴에 상처 준 일들을 참회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그들을 알든 모르든)과 살아있는 모든 미물마저도 사랑하고 작은 물건마저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참으로 자각하고 매일매일 사랑하고 돕는 일을 해야 합니다. 즉 자신이 사는 이 세상에서 중생을 돕고 어떤 사물마저도 자기를 대하듯이 대하는 일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매일매일 이와 같이 일체를 둘로 보지 말고 너와 내가 본래 없는 일체가 하나인 자기를 여의지 않도록 망령된 자기를 버리고 정진해 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분명해지면 다시 공부한 바를 이르시기 바랍니다.
▶저는 마음이 불안합니다.
■ 혜봉 : 불안한 마음을 내 놔 보세요.
▶ 내 놓을 수가 없습니다.
■ 혜봉 : 불안한 마음을 내 놓을 수 없다 하셨는데 그러면 몇 가지 묻겠습니다. 그 불안한 마음이 눈에 보입니까?
▶ 보이지 않습니다.
■ 혜봉 : 손에 잡힙니까?
▶ 잡히지 않습니다.
■ 혜봉 : 형체가 있습니까?
▶ 형체가 없습니다.
■ 혜봉 : 형체도 없고, 손에 잡히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데 불안한 마음이라는 것이 어떻게 있지요?
▶ 느낌으로 있습니다.
■ 혜봉 : 그러면 그 느낌이 영원합니까?
▶ 영원하지 않습니다.
■ 혜봉 : 본래부터 있던 것입니까?
▶ 아닙니다.
■ 혜봉 : 실체가 있습니까?
▶ 실체가 없습니다.
■ 혜봉 : 아직도 불안합니까?
▶ 아직도 불안합니다.
■ 혜봉 : 누가 불안하지요?
▶ 제가 불안합니다.
■ 혜봉 : 불안이 당신입니까?
▶ 그렇지는 않습니다.
■ 혜봉 : 그러면 불안은 어디서 나왔지요?
▶ 아! (놀라면서) 제 생각이 만들었습니다.
■ 혜봉 : 어떤 생각이 불안을 만들었습니까?
▶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일을 실패하면 안 돼.' 하는 생각이 불안을 만들었습니다.
■ 혜봉 : 일을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불안을 만들었다는 것이 분명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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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