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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도 흔치 않다. 흔히들 이 문제는 언설로써 대답할 성질이 아니라고도 한다. 선가(禪家)의 전통으로는 이 논의 자체가 힐난의 대상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는 물론 답변을 회피코자 함이 아니라, 참뜻을 곡해하거나 한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를 우려함이다. 그러나 전체를 드러낼 수 없다 하여 부분마저 가려 둘 수는 없다. 그것을 막연히 신비화하는 것보다는 부분적이나마 구체화하는 것이 우리의 자각적이고 실천적인 삶을 위해 바람직할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최상목표는 보리 또는 각(覺)을 얻는 것이라고 누구나 알고 있다. 이것을 해탈이라고도 하고 열반이라고도 한다. 언어적 한계성을 인식하면서도 『보리』니 『각』이니 하는 말을 깨달음이라 표현하는 것도 불교의 지상목표를 보다 쉽고 구체적으로 이해해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이 자체가 충분히 이해를 도모할 수 없을 것이기에 일찍이 여기에 여러 형태의 수식어가 붙어 그것은 정각(正覺)·등(等)정각·무상(無上)정각 등으로 표현되어 왔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원 발음은 아눗다라삼약상보디)라는 말은 그 또한 참뜻을 곡해할까를 우려한 원어의 음사이다.
어쨌든 깨달음에 대해 언급할 때 그 말은 두 가지의 측면을 함축하고 있다. 즉 하나는 일체의 현상에 대해 인식의 태도이고, 또 하나는 그 인식의 내용이다. 물론 이 둘은 분리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편의적인 이해를 위해 구분해 볼 따름이다. 깨달음이라는 인식의 태도는 자기확인이다. 자기가 자기 스스로의 변화를 아는 것이다. 스스로를 확인하게 되는 것은 내부의 의식에 변화가 있을 때일 것이다. 지속된 의식에 변화가 생길 때 자기를 획인하게 된다. 그 이전에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때문이다. 과거 이래로 계속된 의식을 답습하는 것으로는 깨달음이라는 자기확인이 일어날 리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깨달음이라는 인식태도는 의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의식의 전환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는 달라진 인식의 내용이다. 결국 뭔가 달라진 인식의 내용이 없을 때는 자기확인이라는 깨달음이라는 깨달음의 태도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가치의 판단이 개입되어 있다. 즉, 달라진 인식의 내용이 바람직하지 못할 때는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불교에 있어서 그 깨달음의 내용은 진리 또는 진실이라고 포괄적으로 표현된다. 부처님이 깨달았던 진리의 내용은 무엇일까? 이 의문을 파악할 때,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구체적인 의미가 밝혀진다.
부처님이 정각을 성취했다고 할 때 그 내용은 이후의 교설 전체에 간직되어 있겠지만, 그 교설 전체가 깨달음을 얻는 그 순간에 바로 터져 나왔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적어도 그 교설 전체를 잉태한 종자라 할 만한 계기가 되는 깨달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압축하여 연기(緣起)와 중도(中道)라 말하는 데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부처님의 모든 교설은 이 연기와 중도에 대한 부연적 설명이다. 또는 그 둘의 다양한 표현이다. 연기란 현상세계의 모든 것이 서로 의존하고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에 있다는 정확하고 진실한 법칙이며, 중도란 현상세계의 일부인 인간이 그의 진실한 법칙에 합치하기 위한 인식과 실천의 바른 태도이다. 결국 연기와 중도는 동일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후 전개되는 불교의 교의가 입증한다.
이러한 깨달음의 내용을 알아 듣기 쉽게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삼법인·사성제·팔정도·십이인연 등의 근본교설이다. 이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이 해탈이요 열반이며, 그 성취가 부처이다. 부처는 현상의 진실한 법칙에 합치하기 때문에 걸림이 없는 자로서 그 행위에 있어 불편부당함이 없다. 즉, 완전한 인격자이다. 실로 부처님은 깨달음이라는 이 법에 의해 자신의 인격적 실현에 전력을 쏟았던 것이다.
연기와 중도라는 깨달음이 우리에게 실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엄격히 말하면 연기와 중도가 서로 다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연기는 올바른 인식의 측면을 가리키고, 중도는 올바른 실천의 측면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먼저 연기란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 즉 세계의 모든 존재는 결코 단독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의존하고 관련을 맺어 영향을 미치는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이 법칙은 또한 인간에게 있어서 인식의 논리적 근거가 된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연기는 모든 존재가 전개되어 가는 원리를 해명하는 발생적 인과관계인 동시에, 그러한 인과관계에 대한 인간의 사유방식이다. 연기가 상의상관의 발생적 인과관계라는 뜻을 견전에서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나며,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고 설한다. 또 이를 보다 쉽고 구체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설한 것이 십이인연설이다.
인연(因緣)은 연기의 다른 표현이다. 인연이란 연기를 보다 실체적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연은 불교에서 파악한 현상전개의 인과법칙을 보다 명확히 표현한 개념이다. 이를 인간의 삶이라는 주체적 입장에서 이해할 때, 인연에서 『인』이란 나의 존재방식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나의 입장이나 견해나 주장을 뜻하는 한편, 『연』이란 다수의 존재방식으로서 나의 입장에 대한 타인, 즉 사회의 신용을 뜻한다. 그래서 『인』은 하나의 원인이요 『연』은 복수의 원인이라 이해되는 것이다. 이 『인』과 『연』의 화합에 의해 역사와 현실은 전개된다고 보는 것이 인연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인연관을 통해, 자기라는 하나를 전환하여 타인이라는 복수를 낳는 생성의 이론을 주창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는 나와 사회가 별개일 수 없다는 불교적 인식이며, 인간 각자는 사회발전적 주체요 동력임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인』은 어떤 조건을 갖추는 동력인(動力因)이요, 『연』은 그 동력인이 영향을 미치는 질료인(質料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인간이 자기창조의 법칙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연 또는 연기는 곧, 중도요 공(空)이다. 근본경전에는 "중도=연기, 연기=공"이라는 이해가 이미 표출되어 있으며, 대승불교에 이르면 "공=연기=중도"라는 공식이 명확히 드러난다. 중도란 극단적인 사고를 거부하는 태도로서, 고통과 즐거움의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다는 입장에서, 있다거나 없다는 생각 또는 유한하다거나 무한하다는 생각의 어느 한쪽에 빠지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입장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팔정도와 육바라밀이다. 이 중도를 설하는 경전에서 "중(中)에 의해 법을 설한다"고 하는 그 법의 내용은 "무명(無明)을 연(緣)으로 하여 행(行)이 있다"로 시작되는 십이인연을 가리키고 있다. 중도가 연기임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中)』이란 두 변에 대해 존재하는 것이다. 『중』은 두 변을 기반으로 하여 존재하는 것이고, 『중』 속에 두 변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두 변은 전체이므로, 전체를 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나'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잊어야 할 필요가 있다. 자기를 제외한 전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우리 인간의 현실이다. 따라서 전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은 자기에 사로잡혀서는 자기가 포함되어 있는 전체를 파악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전체를 본다 하더라도 이기심이 없는 총체적 인식, 즉 고정관념이 없는 총체적 인식이 바로 중도하고 결론 지을 수 있다. 그래서 꽃이 진다는 사실은 이미 꽃이 핀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고통은 즐거움을, 삶은 자체 속에서 열반을 추구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중도는 인식과 자세의 전환을 요구하게 되고, 그것은 끊임없이 자기비판과 반성의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곧 중도가 『공』이라는 인식을 통해 입증된다.
위의 관점을 확대할 때, 중도는 공(空)이라고 표현될 수 밖에 없다. 중도는 고정된 어느 한 점이나 관념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중』 자체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공에는 '텅 빈'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이는 '집착이 없는'이라는 또다른 의미로 이해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도는 전체에도 집착하지 않고 『중』에도 집착하지 않는 데서 실현된다. 이러한 인식이 『공』이며, 『공』은 나아가 『공』 자체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는 일체를 남김없이 부정한다는 말인데, 실체의 현실에 있어서는 끊임없는 비판적 인식의 태도를 강조한 것이며, 결국 일체의 긍정으로 귀착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요컨대 일체를 예외없이 부정하는 절대부정의 목적이 무엇이겠는가? 한 마디로 말하면, 진실하게 있는 것을 현실로 드러나게 하여 있는 자체의 모두를 구제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 진실을 추구하는 보다 철저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지적하는 것이 『공』이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이 『공』의 가장 구체적인 실천을 자비라 하는 것이다. 공의 인식과 자비는 서로 의존하고 보충하여 혼연된 불교정신을 이룬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불교의 깨달음이란 연기·중도·공을 인식하는 것이며, 자비의 실천으로 그 실상이 드러난다. 이는 자기창조와 그 사회적 실현을 위한 의식의 전환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자주(自主)·자율(自律)·자유(自由)를 추구하며, 이의 사회적 실현으로서 평등을 구현하려는 끊임없는 자기비판적 인식의 과정은 곧 깨달음의 과정인 것이다. 이의 실천적 태도로서 중도는 바로 자유이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며, 보편적 가치이다. 이해(利害)가 대립하는 나와 너의 세계인 역사적, 사회적 현실에 있어서, 인간이 전체를 설정하여 그 속에서 중(中)을 발견하는 것은 단순한 수량적 계산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 현실 속에서 보편적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는 곧 역사적 현실의 진상을 통찰하는 일로 귀착한다. 이 역사적 현실의 존재방식을 연기라고 보는 것이 근본불교의 입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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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이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