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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를 하기 전에 반드시 하나 염두에 두셔야 하는 게 있습니다. 자신의 출가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선해서 도인되기를 꿈꾸는 분들은 과연 자신이 오랜 시간 앉아서 화두를 들 수 있는지, 그런 신심과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있는 게 쉬워보여도 무척 어려운 겁니다. 한 시간만 앉아있어도 무릎이 쑤시거나 허리가 결리는 사람, 다시 말해서 온 몸을 비비꼬는 사람이라면 선방에 가기 어렵습니다.
불교를 학문적으로 공부한다는 것은 불교의 교리를 논리적으로 따지고 듦으로써 세계와 중생의 삶을 규명하는 것인데, 생각이 단순한 사람은 오래 하지 못합니다. 전체를 조망하는 거시적(巨視的)인 안목도 있어야 하고, 한자(漢字) 한 자 한 자의 쓰임새를 찾아 들어가는 미시적(微視的)인 안목도 있어야 하는 게 학문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기도하는 것도 어렵긴 마찬가집니다. 짧게는 1시간에서 길게는 하루 종일 목탁치며 염불해야 하는데 그게 보통일이겠습니까? 행정하는 것, 소임 사는 것을 일부 수행자들은 하찮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찰을 운영하거나 종단의 일을 챙겨야 하는 것이므로 능력이 있어야 하고 많은 인내력을 필요로 합니다. 포교를 하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이 시대 언어로 설명해야 하는 것이므로 불교 공부 뿐만 아니라 교양도 많이 쌓아야 하고, 무엇보다 크나큰 원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밖에 세분해보면 여러 가지가 더 있겠지만 생략합니다.
흔히 스님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실제로 살아보니 결코 그런 게 아닙니다. 화두 드는 스님은 화두를 놓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고, 기도하는 스님은 마음으로 불보살님을 염(念)하고 있습니다. 포교하는 스님은 어떻게 하면 쉽고 재미있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를 궁리 중에 있고, 학문하는 스님은 나름대로 깊이 사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존경하는 어느 큰스님은 말씀하십니다.
“한국 불교의 병폐 가운데 가장 큰 게 뭐냐면 스님들이 자기 확신이 없다는 거예요. 학인 스님은 책을 열심히 보면 될 텐데, 책 보다 말고 ‘내가 책이나 보려고 출가했나, 선방 가서 화두 들어야 되는데···’ 이래요.
기도하는 스님은 기도하다 말고 ‘내가 기도나 하려고 출가했나, 선방 가서 화두 들어야 되는데···’ 이러고 있고, 주지는 뭐라고 하냐면 ‘내가 주지나 살려고 출가했나, 선방 가서 화두 들어야 되는데···’ 이러고 있어요. 많은 스님들이 그래요.
전체 스님들이 다 선방에만 간다면 포교는 누가 하고, 불교학 발전은 누가 시키고, 신도들 기도는 누가 해주고, 사찰 운영은 누가 하느냐는 거예요. 이거 참 문제예요.
일념으로 화두를 들면 결국 부처되듯이, 일념으로 기도해도 부처 되는 거예요. 부처님 말씀인 경전을 열심히 들여다봐도 결국 부처가 되고, 열심히 포교하거나 행정해도 제대로만 하면 결국 부처되는 거예요. 참선도 수행의 하나고, 기도, 학문, 포교, 행정도 결국 수행인 거예요.”
이 말씀은 참선지상주의(參禪至上主義)에 빠져 있는 오늘날 절집에 보내는 고언(苦言)입니다. 참선이 좋긴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맞는 건 아닙니다. 자신의 근기와 능력에 따라 수행법도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출가를 꿈꾸는 사람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게 뭔지,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게 뭔지 잘 살펴야 합니다. 참고가 되셨습니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이렇듯 출가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은사스님을 결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평생 참선하는 수좌가 되고 싶으면 그런 은사스님을 모셔야 지도를 제대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은사 상좌가 걸망지고 제방 선원에 다니면서 수행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아름답습니다.
포교에 뜻이 있는 분은 포교 원력을 갖고 계신 분을 찾아가야 배울 게 많습니다. 학문의 길을 가고자 하시는 분은 학자 스님 밑으로 들어가야 목표 도달이 빠릅니다. 행정에 뜻이 있는 분도 오랜 노하우를 전수 받을 수 있습니다.
포교에 뜻이 있는 분이 평생 참선만 하신 수좌스님 밑으로 들어가면 은사스님은 상좌를 ‘덜 된 놈’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수행도 없으면서 포교가 되느냐는 거죠. 참선에 뜻이 있는 분이 포교하시는 스님의 상좌로 들어가서 어찌어찌하다 포교하게 되면, 포교하면서도 맨날 “참선, 참선”하면서 미련을 떨치지 못합니다. 주지나 총무원 같은 데서 소임을 사는 스님 밑으로 들어가면 먼저 법당 기도와 살림을 맡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원하는 공부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모든 은사와 상좌 관계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세속에서 부모를 잘 만나야 자신의 소질을 잘 살릴 수 있듯이 절집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상좌를 친자식처럼 아끼며 지도해주고 살펴주시는 은사 스님이 계신가 하면, 자신의 상좌가 무얼 하든 관심을 두지 않는 은사 스님도 계십니다.
은사 스님 가운데서 가장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상좌 뒷바라지는 조금도 하지 않고는 일만 부려먹는 스님입니다.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야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불만이 있을 리가 없고, 설령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마지못해 시키는 걸 하게 되지만 몇 년 장판때가 묻으면 은사 스님 말씀을 무시하게 됩니다.
원래 은사 스님은 상좌가 출가한 지 얼마되지 않은 초발심자 일 때는 학비와 생활비, 그리고 약값을 대줘야 합니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은사 스님의 의무입니다. 제자는 은사 스님을 존경하고 따르면서 주변을 살펴드려야 하고 은사 스님이 늙으시면 수발해 드리고 열반에 드시면 다비를 해 드리는 것이 의무입니다. 은사 스님이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어느 상좌가 의무를 다하겠습니까?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는 경우는 한국의 일부 특권층을 제외하고는 없을 것 같습니다. 권리의 크기는 의무의 크기와 정비례하는 것이 상식적이고 바람직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의무만 있고 권리가 없는 경우는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 되지 않으며,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 관계가 오래 갈 수 없습니다.
물론 바람직하다고 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만 상좌가 구족계를 받으면 승용차를 하나씩 빼주는 은사 스님도 계십니다. 하지만, 상좌 학비조차 주지 않아 이절 저절 다니며 부전살이를 할 수밖에 없게 하는 분도 계십니다. 상좌가 무얼 하든 하고 싶어하는 걸 지원해주시는 후덕한 분도 계시지만, 당신 말을 듣지 않으면 ‘국물도 없는’ 매정한 분도 계십니다.
우리 은사스님은 옛날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모 자식 간은 천륜이라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은사, 상좌간은 의(義)로 맺어진 일종의 계약관계라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적잖은 노력이 필요하다.” 시사하는 게 많은 말씀이니 잘 새겨두실 필요가 있습니다.
적잖은 상좌들이 은사스님과의 갈등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어느 스님을 은사로 모실지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은사 스님은 수행생활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지갑을 쥐고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어느 스님을 은사로 모실 것이냐 하는 것은 거듭 강조하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출가는 편하게 놀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시쳇말로 공짜밥 먹는 게 어디 쉬운 줄 아십니까? 출가라는 건 부처되기 연습입니다. 다만 자신의 근기에 따라 그 방법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출가를 꿈꾸는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면서 밥 먹겠다는 고약한 심보를 가졌다면,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아 스스로 세속으로 돌아가는 인연을 만나게 됩니다. 참선과 포교와 기도와 학문, 그리고 행정, 이러한 수행 가운데 그 어느 것도 하고 싶지 않고, 또 할 수도 없다면, 안됐지만 출가의 꿈을 접으셔야 합니다.
글. 한북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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