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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누이 말해 왔듯이 불교는 포용과 관용의 종교이므로 불교라는 말 앞에 그 성격을 표시하는 수식어가 붙은 것이 이상할 리가 없다. 그것은 불교를 설명하는 일차적이고 편리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예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소승불교ㆍ대승불교로부터 시작하여 인도불교ㆍ중국불교 등의 용어는 지극히 상식화되어 있고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왕실불교ㆍ민중불교라는 말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그 많은 용어 중에서도 민중불교라는 말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 이유를 표명하지 않지만, 민중불교라는 말에 대한 선입관이 대체로, “민중불교란 마르크스의 이론과 같은 사회과학을 불교에 접목시키려는 주객전도의 입장을 취한다”는 시각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그야말로 선입관에 그쳐야 한다. 이런 선입관으로써 보다 발전적으로 개발할 소지가 있는 새로운 입장 전체를 무시해 버리려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민중불교라는 말 자체는 하나의 이념으로서 얼마든지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중불교라는 말은 옳지 않고 중생불교라는 말이 옳다라는 식의 주장이나 그 반대의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민중불교라는 말로써 천명된 이념이 있음은 엄연한 현실이다. 이 현실 자체를 용어의 파기로써 없었던 것으로 간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의 용어가 거기에 담긴 이념이 옳든 그르든 보편적으로 통용되었다면, 그 용어에는 당시대의 사회적 배경 및 사용자의 의식이 담겨 있는 것이다. 문제의 해결은 그러한 배경을 이해하고서 이후의 의식을 바르게 정립하는 데에 있다. 용어를 파기한다든가 수정한다고 하여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배경이나 의식이 아울러 없어지거나 수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민중불교라는 개념의 성립을 현실로서 인정할 때, 우리는 역사 전개의 과정에 서 있음을 의식할 수 있다.
그 과정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민중불교는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하여 당장 확정적으로 답변하기가 곤란하다. 그것은 과거에 실재했다가 현재는 정지상태에 있는 개념이 아니고, 현재 운동 중인 개념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운동의 양상을 파악하여 그 이념을 추출해낼 수 있다. 여기에는 객관적인 시각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그 이념을 끌어내는 데에 있어서 운동가마다 아전인수의 경향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운동의 바탕으로서 이념을 제시하는 운동가들의 불교에 대한 이해가 모두 객관적이거나 타당하다고만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운동으로서가 아니라 후대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하나의 사상으로서의 민중불교의 문제점은 근본적으로 여기에 있다.
어떤 이는 “모순 구조를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그로부터 기인한 민중들의 종속적인 삶을 변혁시켜야 한다. 민중이 스스로 삶과 역사 발전의 주인임을 자각하여 그들 스스로 사회변혁을 통해 해방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집단적 인간해방운동이 민중불교운동”이라고 말한다. 이는 민중불교를 천명함에 있어 사회과학의 이론을 앞세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불교사의 발전과정을 통해 민중불교를 천명하는 대표적 입장은 “민중불교가 가지는 역할을 역사적 측면에서 얘기한다면 초기 대승불교의 입장으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들은 깨달음이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역사적 삶의 현실을 떠나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없으며, 타인을 위한 활동(利他)이 바로 수행의 완성(自利)이 된다는 교리를 내세웠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입장은 민중불교의 출발점을 곧바로 부처님으로부터 찾아, 고통받는 인간의 구원과 해방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 민중불교라고 보는 입장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
보다 더 이론적인 논의를 통해 민중불교라는 개념의 성립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예가 있다. 이 경우는 중생불교와 민중불교를 구별하고 그 차이를 설명한다. 중생불교란 “한없는 중생을 남김없이 다 건지오리다”는 맹세를 실천하려는 입장이라고 본다. 그런데 중생불교의 그러한 보편적 구제원리는 현실의 세계에서 구체적이고 역사적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 말은 중생불교의 이념이 민중불교로써 실현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즉, 민중불교는 “작고 약하고 선한 자는 거두어 들이고, 크고 강하고 악한 자는 항복시키는 것”이며, 더 나아가 “엄청난 악의 세력이 폭력을 사용하여 대중을 괴롭힐 때, 그에 맞서서 방편으로써 역시 폭력에 호소하여 절복시키는 중도적 실천”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민중불교는 중생불교의 중도적 실천불교”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를 보다 구체화하여 이렇게 결론내리고 있다. “중생불교는 보편적ㆍ초역사적ㆍ절대적 불교임에 대하여, 민중불교는 방편적ㆍ역사적ㆍ상대적ㆍ조건적 불교이다. 중생불교가 불교의 본질임에 반하여 민중불교는 불교의 현상이다. 그러므로 본질은 현상화하고 현상은 본질을 나타낸다는 변증법의 관점에서 볼 때, 민중불교는 항상 중생불교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이상은 상당히 비약된 감이 있고 자기논리에 빠져 있는 면이 없지 않으나, 민중불교의 당위성을 천명하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 논리에는 분명히 문제점이 있다. 객관적 이념의 측면보다는 주관적인 운동의 측면에서 민중불교를 규정하려 함으로써 민중불교 자체의 취의를 오도할 소지를 스스로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논의전개로 보면 민중불교는 본질이라고 하는 중생불교를 포용하는 것이다. 또 그래야만이 중도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현상이라고 스스로 규정한 민중불교를 중생불교와 분리시켜 현상만을 중시하는 듯한 결과를 빚고 있다. 아마 이 논리를 전개시킨 본래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지 모르나, 실제의 운동은 민중불교를 본질과는 별개의 현상으로만 이해한 양상을 보여 왔다. 그렇기 때문에 폭력정당화의 논리로까지 비약되는 것이다. 동일한 두 가지의 방법이나 내용을 채택하는 것을 중도라고 하지는 않는다. 악에 대한 악, 폭력에 대한 폭력을 중도라고 한다면, 이는 너무 일방적인 주장이다. 폭력이 방편으로서 정당화될 수 있다면 그것은 특수한 상황에서이지 불교의 보편적 원리로서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중도적 실천이라고 규정함으로써 민중불교 자체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도적 실천이라는 민중불교가 실제로는 현상을 절대시하고 획일화된 양상으로 나타났음은 민중불교운동의 성격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상당히 객관적이라고 믿을 만한 자료에 의하면 그간에 있었던 민중불교운동의 성격은 다음과 같이 지적된다.
첫째, 기성불교(또는 전통불교)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불교가 가지고 있는 이념 또는 교리 그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주로 실천적 측면의 것이다. 민중의 억압된 삶이 곧 고통이라 할 때, 그것을 극복 또는 해결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불교의 이상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둘째, 정치ㆍ경제ㆍ사회적으로 모순구조를 변혁시킴으로써 민중의 현실고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그 방법으로는 계급투쟁적 색채가 매우 강하다는 점이다.
셋째, 교리에 대한 해석 방법도 전통적인 교판敎判의 틀이 아니라 사회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고苦의 원인을 인간의 내재적 욕망이나 무명無明에 의한 것으로 보지 않고, 외재적인 사회구조의 모순에 기인한다고 보며, 해결방법 역시 모순구조의 해결에 중점을 두고 있다.
넷째, 이같은 이념에 동조하는 사람은 유대감을 바탕으로 일종의 결사적結社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선진적 자각의식이 매우 강하며, 그렇지 못한 대중이나 개인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거나 심지어는 적대감같은 것마저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민중불교운동이 일천한 역사에 비하면 오히려 성과가 더 많았다고 평할 수 있다. 그 이념적 근원이 어디에 있든 현실적으로 민중불교의 이념이 제창되고 운동이 전개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민중불교가 불교운동의 새로운 진보적 세력을 형성하면서 활동을 전개한 것은 1980년도 이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물론 이 전에도 그에 관한 논의가 있긴 했다. 어쨌든 그 성과로는 첫째, 기성불교에 대한 나태와 무기력을 비판함과 동시에 사회구원을 위한 운동을 실천적으로 전개함으로써, 불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둘째, 1980년대 중반의 암울한 상황에서 불교권 내에 민주화 열기를 광범하게 확산시킴으로써 한국사회의 민주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점이다. 셋째, 불교교리를 사회과학적 시각에서 해석함으로써, 불교교리가 학문적 논리체계인 것만이 아니라, 인간행방을 위한 구원의 체계라는 점도 재인식시켰다는 점이다. 넷째, 불교교단 내에서 불교자주화운동을 주도함으로써 불교의 민주적 역량을 회복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민중불교가 문제시되어 온 것은 그의 이념적 측면보다는 운동적 측면에서였다. 그 이념에 대해 말한다면 불교학자들의 책임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민중불교를 천명하는 기본시각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타당성도 지니고 있다. 대승불교도 애초엔 새로운 불교운동이었다고 평가된다. 민중불교의 출발점도 여기에 둔다면, 그것이 부정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초기 대승불교운동가들의 그 당시 시각과 입장을 약 2000년이 지난 이 시점으로 옮겼을 때 나타나리라고 예견되는 상황을 민중불교가 자처하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그 기본논리는 대승운동가들의 이타적 자세를 현시점에서 현상황의 타개를 위해 실현하다는 점이다.
현재의 민중불교운동가들이 그 이념의 정립에 있어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은 앞으로 개선되고 보완되어야 할 상황이지, 그로 인해 그 논의 전체가 배척되어야 할 상황은 아니다. 소수의 비전문적 지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그 기본입장이 타당함을 공감한다면 전문적 지식인이 이념의 정립에 원조해야 한다. 어찌 보면 이는 불교학자의 책무이기도 하다. 만약 민중불교가 불교를 왜곡하는 것이 된다면 이를 방관한 책임을 면키 어려운 것이다. 이 책임은 당연히 승단도 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기성불교는 더 이상 민중불교운동을 방관하거나 외면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부처님이 행하고 제시한 자비와 구제의 자세를 당면한 시대와 사회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불교인의 공동 관심사이다. 그러므로 민중불교가 이타利他의 실천적 자세를 견지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인정해야 할 것이고, 그 방법론을 촉구하면서 아울러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관점에 있어서 민중불교운동의 주도자들에게도 반성이 요구된다. 그간의 운동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몇 가지 지적한다면, 투쟁 과정에서 야기된 폭력화 현상, 거부감을 주는 계급투쟁적 성격, 일부 교리에 대한 지나친 자의적 또한 기계적 해석으로 인한 왜곡의 우려, 불교운동으로서의 주체성이 약하고 일반 사회운동에 중속되는 듯한 태도, 운동 주역들의 기성불교에 대한 우월감과 지나친 지사적志士的 엘리트의식, 운동 세력들 간의 불협화 등이다. 이들이 내세운 이념상의 문제점을 앞에서 약간 언급했으나, 이는 민중불교에 대한 의식의 제고 및 공감대 확보와 더불어 해결되리라 관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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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이해 
